커버 스토리
라오스에서의 영양학 과학기술자문단(TPC) 경험
저는 2017년 은퇴 후 우연한 기회에 한국연구재단 파견 영양학 TPC (Techno Peace Corps.) 단원으로 라오스에 가서 라오스국립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게 되었고 많은 새로운 경험과 신선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전문가를 개발도상국에 파견하여 지원하는 이런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의 많은 유수한 영양학자들이 은퇴 후에 새로이 도전해 볼 수 있는 보람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지면을 통해 저의 경험을 나누려고 합니다.
한국연구재단의 TPC 프로그램이란?
TPC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전 세계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과학기술분야 전문가 지원요청서를 제출받아 우리나라 전문가를 해당 국가에 파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전문가로 선정되면 한국연구재단에서 현지 주택비, 생활비, 왕복 항공료, 현지 정착비, 의료보험, 기타 부대비용 등을 지원받으며 필요할 경우 현지 전문가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소규모 연구비도 지급됩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은퇴를 앞둔 2016년 남편이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지원하였고, 선정되어 라오스국립대학 화학과로 먼저 떠나게 되었습니다. 방학에 라오스를 방문한 저는 라오스 국립대학에 학술제에 갔다가 라오스국립대 농과대학 식품공학과의 한 젊은 교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교수로부터 식공과에 영양학 강의가 필요하고, 또 본인이 하고 있는 연구에 영양학 부분이 있으니 좀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 교수는 한국의 TPC 프로그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기에 이를 소개하고는 일단 한국 연구재단으로 영양학 분야 전문가를 요청해보라고 권하였습니다. 다음 해에 그 교수가 한국연구재단에 영양학 분야로 전문가 지원 신청을 하였고, 저는 한구연구재단 공고를 통해 지원, 선정되어 라오스국립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라오스 국립대학에서는 무슨 일을 하였나?
라오스 국립대학에서 한 일은 학부생 영양학 강의와 현지교수와의 공동연구였습니다. 강의는 영어로 진행하였고, 영어가 가능한 젊은 교수가 통역해 주었습니다. 식품공학과 소속 학생들은 영양학 강의가 처음이기에 영양소 기본 지식, 소화 흡수, 대사를 비롯하여 영양판정과 권장량 개념을 포함한 기초 영양학 강의 내용을 간단한 영어와 그림을 많이 섞은 파워포인트자료로 강의교재를 준비하여 강의하였고, 이 자료는 향후 제가 떠난 후에도 영양학 강의 교재로 사용될 수 있도록 기증하였습니다. 새로운 분야, 외국인 강의, 또 영어 강의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인지 학생들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집중을 잘 해 주어 재미있게 강의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라오스 교수와의 공동연구는 주로 그 교수의 네덜란드 대학 박사학위 논문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교수는 학위논문 작성을 위해 네덜란드 지도교수와 함께 지난 수년간 라오스 산간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건, 영양, 식품공급 등을 망라하는 많은 자료 수집을 하였고, 그 자료들 중에는 24시간 회상법으로 식이섭취조사를 수행한 자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료들을 어떻게 분석, 통계처리 및 해석하는지를 알지 못하여 자료들이 그대로 쌓여 있었습니다. 따라서 함께 자료들을 정리하고 통계 처리하여 해석하는 일을 함께 수행하였고, 자료수집의 오류 등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으나 그 중 일부 내용을 라오스 산간지역 어린이의 간단한 영양 상태로 정리할 수 있었고, 보건 및 식품공급체계 분야까지 확대한 포괄적인 내용으로 국제 저널에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TPC 활동 외의 라오스 활동: 코이카 (KOICA) 보건영양 프로젝트 예비조사 자문위원
라오스에 거주하는 동안 코이카 라오스 사무실에서 수행하는 대규모 보건영양 조사사업의 예비조사 업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예비조사는 라오스 북쪽 산간지역의 보건상태가 열악한 지역을 돌면서 본 조사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과 범위를 구상하면서 여러 여건들을 탐색해 보는 것으로, 한국에서 온 보건학 및 통계학, 보건행정학 전문가들과 함께 라오스 북쪽의 군 단위 병원들과 보건소를 방문하여 시설을 둘러보고 주민들도 만나보고 임신부들을 위한 focus group 인터뷰도 진행하였습니다. 라오스 시골지역 병원이나 보건소 수준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열악하였습니다. 라오스도 겨울엔 산간지역의 기온이 섭씨 0도 이하까지 떨어지는데 보건소나 병원의 치료실 뿐 아니라 수술실이나 분만실에도 아무런 난방시설이 없어 추위에 덜덜 떨면서 치료를 받고 아이를 낳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식생활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시설은 전무하였고, 식품조달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식생활 인식 수준이 매우 낮고, 임신 중 금기 식품에 대한 미신의 영향이 만연해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교육하며 영양관리 해 줄 시설과 인력은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건의 한 축으로서 영양파트에서 본 프로젝트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지를 건의하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기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라오스 생활
코비드로 인해 3년간의 TPC 활동이 일시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고, 저는 TPC 활동이 끝난 후에도 라오스에 몇 년 더 머물러 있었기에 이런 저런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활동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라오스 건기에 가뭄이 심한 지역에서는 농사도 못 짓고 심하면 식수까지도 위협받는데 이런 지역에 우물 파는 일이 시급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 동료들에게 알려 그들의 도움으로 가뭄이 심한 지역에 모두 7개의 우물을 팔 수 있었습니다. 우물은 대개 그 지역 초등학교에 파서 우선 학생들이 사용하고, 그 우물을 인근 마을까지 연결하여 농사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우물이 개통되어 물이 나오는 광경을 바라보고 학생들과 주민들이 얼마나 기뻐하던지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라오스 오지에는 대부분 초등학교에 화장실도 없는 상태여서, 우물 뿐 아니라 초등학교에 화장실을 만들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 라오스 시골 마을에서 교육 사업을 하시는 선교사님을 도와 그 학교에 필요한 물품 지원, 기숙사에 겨울에 필요한 침낭 지원, 라오스 장애인들을 위한 센터에 사정이 열악한 장애인들의 생활비 지원 등을 수행하였습니다.
맺는 말
지난 7 여년의 라오스 생활을 마감하면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보다 많은 영양학자들이 이런 개발도상국가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영양학이라는 전문성을 살려 그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였으면 하는 것입니다. 다른 분야들은 한국연구재단에서 TPC 모집 공고를 내면 여러 명이 지원하는데 비해 영양학 분야는 거의 지원이 없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은퇴 후 몇 십 년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전문직을 은퇴하고서도 보다 많은 영양학자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지식을 개발도상국을 위해 나누고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글을 마칩니다.
저자 이력: 강명희교수님은 한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32년간 재직하셨고, 라오스국립대학교의 파견교수로 근무하셨으며, 2009년 한국영양학회 회장을 역임하시고 현재 한국영양학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