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핫' 이슈
정밀영양(Precision Nutrition)과 한의학의 개인 맞춤치료
정밀영양
개인의 생물학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표준화된 접근을 해온 기존 영양학에 비해, 유전자, 마이크로바이옴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영양인 정밀영양(precision nutrition)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인간유전체 프로젝트의 성공, HapMap 사업 연구들이 성과를 이루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과거에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개인 맞춤치료 및 예방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사실, 서양의학에서 정밀의학의 개념은 1800년대 중반 Sir William Osler가 환자의 특성 파악을 중요시한 데서 시작하여, 1950년대 DNA 연구를 통한 유전체학 발전을 거치면서 2015년 정밀의학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의학의 개인 맞춤치료
수천년 전부터 한의학에서는 획일화된 치료를 해온 서양의학과는 달리 개인 맞춤치료를 해왔습니다. 동일한 질병에 대해서도 개인의 몸상태를 파악하여 다른 치료를 하고(동병이치, 同病異治), 성별에 따라서 다르게 접근해서 치료를 한다는 점은 현재의 정밀의학, 정밀영양과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의학과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필자는 체질의학, 소화기능(소화불량, 식욕부진, 과민성대장, 변비 등)의 예를 통해서 한의학과 정밀영양이 어떤 점에서 유사성을 갖는지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본 글을 쓰고자 합니다. 다만, 본 글의 한의학 관련 내용은 필자의 지식과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의견에 근거한 것입니다.
한의학과 영양학의 유사성
영양학과 한의학은 여러 면에서 유사성을 갖습니다. 개별 식품들과 한약재는 모두 자연에서 나는 복합성분의 천연물이고, 음식이 한 가지 식품이 아닌 여러 식품을 혼합해 만든 recipe인 것처럼 한의학 역시 여러 가지 한약재를 조합한 처방의 형태로 복용하여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한다는 점에서 필자는 한의학이 약의 원재료와 처방 방식에 있어서 서양의학보다는 영양학과 좀 더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체질의학과 영양유전학
한의학에서 체질은 식이나 환경에 의해 변하지 않고 타고 나는 것으로 보며, 일반적으로 4가지 혹은 8가지로 분류합니다. 이는 영양유전학(Nutrigenetics)의 유전적 다형성(genetic polymorphism) 개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체질이라도 식이와 생활관리에 따라서 건강과 질병 상태가 크게 차이가 나서 서로 다른 체질적 증후군(체질병증)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영양소, 음식, 생활패턴이 유전자 발현(gene expression)에 영향을 주는 영양유전체학(Nutrigenomics)의 개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화기능의 개인차와 한의학적 접근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급하게 과식을 해도 잘 소화시키고 불편 없이 다음 끼니를 먹지만, 다른 사람은 조금만 과식해도 소화불량을 겪으며 며칠간 힘들어 합니다. 소화기능이 약하게 타고 난 아이들은 식욕이 없어 밥을 입에 물고 있거나, 음식을 가려먹는 까다로운 식습관(picky eating behavior)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성장발육 및 면역력이 저하되기 쉽습니다. 성인 역시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들은 식사 후 다음 끼니 시간이 되어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거나, 맵거나 기름진 음식, 찬 음식을 먹으면 설사를 자주 하거나 만성 변비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한의학의 소화기능 개인맞춤치료
서양의학에서는 개개인이 호소하는 소화 증상에 대해 대증적인 처방을 투여할 뿐, 이렇게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진단이나 치료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체질적인 진단과 함께 소화기능을 회복시키는 개인맞춤 한약치료를 통해 증상이 크게 개선되고, 한약 복용 이후에도 상당기간 호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치료를 진행합니다.1 이러한 소화기능의 개선은 한약 복용을 통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또는 유전자 발현의 변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한약 복용 이후에도 증상 개선이 유지된다는 점은 한약 복용이 마이크로바이옴의 비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음식과 소화기능 개선 가능성
한약의 효과가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또는 유전자 발현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 결과라면2,3, 매일 섭취하고 있는 음식 역시도 충분히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의학에서 한약 치료와 더불어 체질에 맞는 체질식이를 함께 병행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비단 소화기능 뿐만이 아니라 한의학에서 치료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적절한 영양 가이드를 통한 음식 섭취의 변화나 특정 음식의 섭취가 몸의 비가역적 변화를 일으켜 질병의 치료 또는 치료를 보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론: 한의학과 정밀영양의 통합적 접근 가능성
수천 년간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적인 치료를 해온 한의학적 진단과 치료 효과는 아직 객관적 데이터와 현대 과학적 방법의 부족으로 인해 연구 결과들이 크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특히 중요한 치료방법 중의 하나인 한약은 음식처럼 복합성분의 천연물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메커니즘 관련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한의학과 영양학이 놓인 입장과 방향성은 유사성이 큽니다. 한의학 역시 최근 연구 경향 중 하나가 정밀영양과 같이 유전체, 마이크로바이옴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접근 방법이며4,5, 이 부분에서 한의학과 영양학의 융-복합을 통해 두 학문 분야의 시너지를 높여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Kim K, Lee J, Paik HY, Yoon J, Ryu B, Shim JE. Effects of multiple herb formula SEC-22 supplementation on dietary intake, picky eating behaviors, and growth indices in thin preschool children. Nutr Res Pract. 2015;9(4):393-399.
- Chun J, Lee SM, Ahn YM, et al. Modulation of the Gut Microbiota by Sihocheonggan-Tang Shapes the Immune Responses of Atopic Dermatitis. Front Pharmacol. 2021;12:722730.
- Yun-Jung Lee M-HK. Current Trends of Traditional Herbal Medicine Research on Allergic Disease with Dysbiosis. J Korean Med Ophthalmol Otolaryngol Dermatol. 2024;37(1):57-68.
- Zhang Q, Bai Y, Wang W, et al. Role of herbal medicine and gut microbiota in the prevention and treatment of obesity. J Ethnopharmacol. 2023;305:116127.
- Chen SL, Song JY. Herbgenomics. China Journal of Chinese Materia Medica. 2016;41(21):3881-3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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